군산 하제마을의 600년 된 팽나무를 주인공 삼은 소설 ‘할매’를 낸 소설가 황석영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hani.co.kr


황석영의 신작 ‘할매’는 원고지로 600매에 불과한 짧은 소설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중편 ‘객지’나 ‘한씨연대기’보다 조금 더 긴 정도. 그러나 소설에서 다루는 시간대는 600년 남짓으로 여느 대하소설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소설 주인공은 한 그루 팽나무. 군산 하제마을에 있는 천연기념물 팽나무의 탄생에서부터 현재까지 600년 세월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이 이 ‘할매 나무’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600년 역사가 담긴 600매짜리 소설이니, 원고지 1매에 1년씩의 시간이 나이테처럼 새겨진 셈이다.
소설은 아무르 강변 관목 숲에 날아든 새 개똥지빠귀 한마리로 시작한다.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이 새가 숲에서 지렁이며 애벌레, 들쭉과 시로미 열매 같은 먹이를 얻는가 하면 맹금류 말똥가리에게 쫓 릴게임신천지 기기도 하는 풍경에 사람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말똥가리의 공격으로 털이 뜯긴 앞가슴이 하얀 점처럼 보인다고 해서 ‘흰 점박이’로 불리게 된 이 수컷 개똥지빠귀가 잘 익은 개암 열매처럼 밝은 적갈색 날개를 지녀서 ‘개암이 날개’라는 이름을 얻은 암컷과 짝을 이루고, 겨울이 되자 사흘 동안 남쪽으로 비행해 조선반도 남서해안에 내려앉는다.
“ 황금성게임랜드 개똥지빠귀들은 들판에 날아가서 재빨리 걷다가 멈추어 위를 보고 좌우를 살핀 뒤에 땅을 헤집고 또다시 걸어가는 동작으로 들판 여러 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팽나무 아래에는 낙엽이 두껍게 깔렸고 이제 새잎이 나면 나뭇가지로 올라 잎을 베어 먹으며 살아갈 알락나비, 노랑나비, 오색나비의 애벌레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바다이야기룰 소설 앞부분의 이런 묘사들에서 세상은 아직 사람이 나타나기 전, 비인간 생명체들의 스스로 그러한 누리처럼 보인다(자연 세계라는 말이다). 월동지에서 먹이 활동을 하던 개똥지빠귀 부부를 황조롱이가 공격하고, 포식자의 발톱에 채인 개암이 날개를 구하고자 맞섰던 흰 점박이가 결국 짝은 구했으나 자신은 치명상을 입은 채 추락해 숨을 거둔다.
“ 릴게임신천지 개똥지빠귀의 뱃속에 팽나무 열매 몇개가 있었다. 열매의 거죽은 새의 시신과 함께 곧 사라졌지만, 딱딱한 굳은 씨앗은 부드러운 모래흙 속으로 들어가 스며드는 물기와 더불어 차츰 땅속으로 묻혔다. (…) 그것은 지난해 이른 봄, 땅에 떨어지던 때와 같은 무렵이 되어서야 굳은 겉껍질이 오랫동안의 습기에 불고 금이 가면서 싹이 트고 실 같은 뿌리가 생겼다.”



소설 ‘할매’를 쓰던 중 작품 주인공인 군산 하제마을 600년 된 팽나무를 찾아간 황석영 작가. 황석영 제공


소설의 주인공인 팽나무의 탄생 장면이다. 팽나무의 탄생이 개똥지빠귀의 죽음 위에서 가능했던 것처럼, 죽음과 삶이 순환하는 과정은 소설 안에서 여러번 되풀이된다. 소설에 사실상 처음 등장하는 사람 주인공인 몽각 스님은 임박한 죽음을 예감하고서 수라 갯벌에 들어가 앉아 열반에 들고, 그의 주검을 칠게 떼들이 갉아 먹는다. 아무르강 하구에서 부화한 마도요 새끼 ‘첫째’가 황해 연안 조선의 갯벌까지 여섯날을 날아 도착한 다음 배를 채운 게 그 칠게들이었고, 어느덧 열살을 넘긴 첫째가 아무르 강과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을 오가는 여정의 중간 기착지로 내리곤 하던 수라 갯벌에서 태풍과 폭우에 스러진 뒤 그 주검을 수습한 것은 생합들이었으며, 사람들은 다시 그 생합을 호미로 캐내어 반찬으로 삼는다.
“지난 소설 ‘철도원 삼대’를 낸 게 5년 전인데, 그 무렵이 마침 코로나 기간이라 집에 머물면서 불경과 시집을 많이 읽었습니다. 코로나란 게 인간이 저지른 업보가 재앙이 되어서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이잖아요? 너희가 살아온 방식, 세계의 운영 방식이 옳았느냐 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삶과 죽음을 하나의 순환 과정으로 보는 불교의 인연설에도 끌렸어요.”
책을 내고 지난 9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황석영은 60년 넘는 작가 생활에서 자신으로서도 처음 시도하는 서사 방식이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는 소설이 한참 진행된 상태에서도 아직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이 빠진 이야기를 쓰는 게 저로서는 처음이라 어색하고 힘들더군요. 그런데 계속 써나가다 보니, 제가 만들어낸 산문에 저도 빠져들어서 기쁨과 놀라움을 맛보았어요. 아마도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쓰면서 느꼈던, 인간과 자연의 조화에 대한 감각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황석영 작가가 신작 소설 ‘할매’를 쓰던 중 소설 주인공인 600년 된 팽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황석영 제공


몽각 스님의 한살이는 조선 현종과 숙종조에 이어진 가뭄과 기근을 배경으로 삼는다. 절에서 내려온 그가 바닷가 팽나무 곁에 움막을 짓고 자리 잡은 뒤 팽나무의 씨앗을 싹 틔워 자란 잎을 고목의 가지 위에 올려주며 건네는 말에서 팽나무는 벌써 ‘할매’로 불린다. “할매, 이것이 당신 자식이라오. 내가 키웠어요.”
몽각의 시절로부터 다시 한참의 세월이 흘러, 하제마을 당골네 고창댁에게 당골판을 물려주면서 시어머니는 말했다. “우리 몸주는 저 팽나무 할매 서낭님이다.” 그 고창댁의 아들 춘삼이가 천주학쟁이들과 연루되는가 하면, 춘삼의 아들 경순이 동학에 입도해 우금치 전투에서 전사한다는 설정은 무속과 기독교, 동학을 오가며 의지처를 찾고자 몸부림쳤던 조상들의 안간힘을 알게 한다. 일제 가미카제 훈련 생도들의 덧없는 죽음을 거쳐 소설 말미에 가면 ‘길 위의 신부’ 문정현과 문규현 형제를 모델로 삼은 유 방지거 신부를 중심으로 새만금 개발 반대 싸움이 그려진다. “저는 수라 갯벌 지킴이 할 테니, 신부님은 그 할매 나무 지키세요.” 환경운동가 동수의 말에 할매 팽나무를 찾아간 유 신부가 “저도 모르게 팽나무에 안기듯이 두 팔을 벌리고 뺨을 대보”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할매 l 황석영 지음, 창비, 1만6800원


황석영은 뜨거운 역사의 현장을 운명처럼 찾아가는 자신의 팔자가 소설 ‘할매’를 낳았다고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저는 말년에 조용히 마음에 드는 글을 쓰며 살 생각으로 2023년 2월에 군산에 내려갔는데, 가 보니 미군 부대에 수용될 위기에 놓인 하제마을 팽나무와 새만금 갯벌을 지키는 싸움이 문정현·규현 형제 신부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환경운동가나 평화운동가의 입장에만 선 것은 아닙니다. 600년 된 나무를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 지니는 의미, 우리가 일으킨 사회와 문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으로 읽히면 좋겠습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신작 소설 ‘할매’를 낸 황석영 작가. “오른쪽 눈이 안 보여서 힘들지만, 5년 남은 미수까지 소설 두세 편은 더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태형 기자 xogud@hani.co.kr 기자 admin@no1reelsi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