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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벽과 바닥까지 분홍빛으로 감싼 공간에 으스스한 작품들이 들어섰다. 흡사 ‘귀신의 집’을 방불케 하는 전시 제목은 ‘강령: 영혼의 기술’.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현장이다. 안톤 비도클 등 뉴욕 출신 예술 감독들은 “동시대 미술의 발전에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경험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전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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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어두운 전시실에서 “내 다리 (내놔)…” 하는 음성이 울려 퍼진다. 소복 차림으로 입에 칼을 문 할머니가 천장에서 관람객을 내려다보고, 절단된 신체 조각이 곳곳에 설치됐다. ‘올해의 작가상 2025’ 전시에 나온 임영주 작품이다. 한국 사회의 오래된 미신과 현대 과학기술의 교차점에서 나타나는 믿음의 구조를 탐구해 온 작가는 한정책수혜주
국의 ‘가묘(假墓)’ 풍습에 착안해 상상 속 ‘빈 무덤’을 전시장에 구현했다.



임영주, '고 故 The Late'(2023-2025).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상 2025'에 전시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500만원으로
◇굿, 귀신, 샤머니즘이 통했다
전시장도 ‘K무속’이 장악했다. 국내 대표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영성과 굿, 무속을 기반으로 한 전시·행사를 내보이고 있다. ‘강령: 영혼의 기술’을 기획한 뉴욕의 예술 감독들은 일찌감치 서울을 주목했다. 한국 무속 신앙을 배경에 깔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흥행하기 전부터다. 이우량주주식
들은 “서울은 현대성만큼이나 풍부한 영적 전통이 어우러진 도시여서 강령을 주제로 한 전시를 선보이기에 최적 장소”라고 했다.
참여 작가는 국내외 50명(팀). 한국 작가로는 동양의 정신 문명과 첨단 기술의 조화를 추구한 백남준을 비롯해 대지 미술과 한국 무속 전통의 결합을 보여주는 이승택, 영화 ‘만신’ 등을 통해 무속과 한국 현대사를 탐종목별주식시세
구해온 박찬경 등이 포함됐다. 전시 개막일에는 이승택 작가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마당에서 석조 모조상을 불태우는 퍼포먼스 ‘분신행위예술전’을 재연해 화제가 됐다. 미술관 측은 “두 달 만에 관람객이 약 10만명 몰렸고, 그중 20~30대가 76%”라며 “젊은 관람객들은 현대의 기술 지배적 사회에서 작가들이 어떻게 강령, 오컬트에 영감을 받아왔는지 흥미로워한다”고 했다.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에 백남준의 'TV 부처'(1989)가 전시된 모습.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은 무속과 동아시아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텔레비전부터 인터넷에 이르는 새로운 기술의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실험했다.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5’에도 MZ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임영주는 ‘가묘’에서 착안한 전시 공간을 360도의 VR 환경처럼 만들었다. 현실과 가상, 하늘과 땅,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이곳에서 관객들은 마치 무덤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생과 사의 경계 속에 놓인 경험을 하게 된다. 임영주가 보이지 않는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탐구한다면, 동양화를 전공한 김지평은 전통을 과거에 종속시키지 않고 열려있는 서사의 장으로 본다. 병풍에 인격을 부여해 ‘디바-무당’이라는 작품을 선보인 김지평은 “미신이나 무속도 전통문화의 일환으로 접근하면 좋겠다”고 했다.



임영주가 전시장에 '빈 무덤'을 구현한 ‘고 故 The Late’(2023~2025)를 보고 있는 관람객. /뉴시스





김지평, '디바-무당'(2023)이 전시장에 설치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프리즈 서울 기간, 서울 곳곳에서 열린 연계 행사 중 가장 인기를 끈 것도 굿판이었다.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가 지난달 4일 앞마당에서 선보인 만신 김혜경의 ‘대동굿 비수거리(작두굿)’를 보려고 외국인을 포함해 1500명이 몰려들었다. 1990년 백남준이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기 위해 스스로 무당이 되어 굿 형식의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로 그곳이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부회장은 “백남준이 굿을 매체로 확장했던 실험 정신을 환기하고, 한국 샤머니즘의 예술적·치유적 에너지를 동시대 미술 맥락 속에서 새롭게 조명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4일 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마당에서 만신 김혜경이 ‘대동굿 비수거리(작두굿)’를 선보이고 있다. 굿이 열리는 1시간 동안 약 1500명이 몰리는 등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갤러리현대





지난달 4일 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앞마당에서 만신 김혜경이 ‘대동굿 비수거리(작두굿)’를 선보이고 있다. 외국인을 포함해 약 1500명이 몰려들어 굿판을 관람하고 있다. /갤러리현대


◇서구서 주목받는 K무속
K무속은 서구 미술계에도 통했다. 설치미술가 양혜규는 한국의 무속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각광받는다. 그의 평면 작업 ‘황홀망’ 시리즈는 굿을 할 때 종이를 접어 오린 후 다시 펼쳐 만드는 ‘설위설경(設位設經)’이 바탕이 됐다. 양혜규는 과거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간담회에서 “서구에서 활동하면서 그곳의 주류인 기독교적 전통에 반하는 이교도적 전통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무속, 샤머니즘과 연결됐다”며 “특히 한지를 이용해 무구(巫具)를 만드는 전통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종이 무구에서 영감을 받은 양혜규의 ‘황홀망’. /장경식 기자


캐나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제이디 차는 마고 할미나 바리 공주, 구미호 등 한국의 설화나 전설에서 영감 받은 작품으로 올해 터너상 후보에 올랐다. 터너상 심사위원단은 “한국 무속 문화의 황동 방울이나 보자기를 활용해 만든 생생한 조각, 사운드, 설치 작품이 깊은 사유와 매혹적인 예술 세계를 정교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제이디 차, '귀향'(2022). 240×260cm.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